의원면직한 지 2개월 정도 지나고 쓰는 후기

 

공무원 합격

 
2021년 여름,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 공부 기간은 1년이었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초시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공무원에는 행정직 외에도 직렬이 다양한데 나는 그 중에서도 사서직 공무원을 선택했다.
 
사서직 공무원을 고른 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대학 때 성적에 맞춰 갔던 학과가 문헌정보학과였는데 문헌정보학과는 졸업하면 정사서 2급 자격증이 나온다. 사서직 공무원은 사서 자격증이 있어야만 응시할 수 있다. 사서 자격증도 있는 마당에 사서직으로 시험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행정직은 업무가 계속 바뀌어서 부서가 바뀔 때마다 새로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들은 반면, 사서직은 도서관에서만 돌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편하다고 들었다. 업무 강도도 사서직이 행정직보다 낮을 것 같았고 커트라인도 더 만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했다.

당시 성적
최종합격! 이때는 행복했지

2021년 7월에 최종 합격통보를 받고 8월 중순부터 도서관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합격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출근하자마자 직감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을...
 


면직을 결심하기까지

 

1. 성급한 진로 결정

내 관심사와 흥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안정적이고 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선택했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공무원이라고 했을 때 그래도 어디 가서 중박은 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직이라니. 주변에서 흔치 않은 직업인데다가 뭔가 우아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와보니 도서관은 생각보다 적성을 많이 타는 직업이었다. 일단 책에 관심이 많아야 하고 작가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처음 출근하고 들은 질문이 '어떤 책을 좋아하냐, 좋아하는 작가는 있냐' 이런 질문이었는데 책은 손에 놓은 지 오래였고 아는 작가도 거의 없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작가를 초빙하는 일이라던가 책에 관련된 행사들을 진행할 때 이런 내용들을 많이 알고 있고 관심이 있어야 일을 할텐데 전혀 그렇지 않아 일에 대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들어와서 보니 다른 직원들 중에는 도서관 / 책 덕후들이 많았다. 아니면 정말 성격이 인싸여서 도서관 행사를 진행하는 게 너무 즐거운 직원도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텐데, 소수직렬 중에서도 소수직렬인 사서직을 애초에 선택했다는 것은 이쪽에 흥미가 있다는 것인 걸. 이런 이유로 사서직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되었다. 현타가 세게 왔다.

 

2. 여초 직장 부적응

나는 초, 중, 고, 대학교 전부 남녀공학을 다녔고 남녀 분반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애들이랑 어울려다니고 남사친이 많냐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왜 성비가 중요한지 여기 오고 나서 깨달았다.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겪은 여초직장의 특징
 
① 텃세가 있다.
내 경우 처음 입사할 때부터 입사 후 4-5개월까지 면직할까 고민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겉으로는 다들 친절하고 잘 웃어주신다. 그러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애매한 텃세가 좀 있었다.
예를 들면 밥 먹을 때 안 껴주고 나간다던가... 입사 초반에는 직원들이 안 껴줘서 혼밥을 하거나 팀장님들이랑 먹은 적도 몇 번 있었다.
 
② 뒷말이 많다.
남에게 관심이 많고 그 사람의 작은 행동 하나가 평가 대상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입사 초반에 그런 게 있었다. 내가 어느 학교 나왔는지 애인은 있는지 등등 앞에서 물어보고 나서 뒤에서 그거에 대해 엄청 얘기한 것 같다. 신입이라 관심 주는 건 좋지만 작은 말실수 하나로 첫인상을 망치게 되면 이 바닥에서 살아 남기 힘들 듯...
 
③ 감정적인 부분
일할 때 사무적으로만 하면 좋을 텐데 가끔 감정적인 분들이 계신 것 같았다. 같은 업무를 해도 기분 좋은 날에는 좋게좋게 넘어가시는데 기분 안좋은 날에는 감정이 더 섞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걸 여직원들에게서 더 느꼈다.
 
 

3. 폐쇄적인 조직문화,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

공무원 조직은 생각보다도 훨씬 폐쇄적이었다. 수직적인 조직의 끝판왕이다. 특히 지방직은 국가직에 비해 나이(경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연차가 쌓이고 호봉이 올라갈 수록 편하니까 버티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근데 그 편해지는 시기는 재직한 지 약 15년(...) 뒤에나 온다. 약 15년 뒤에 6급을 달아 팀장이 되면 그때부터 편해지는 거다. 그 전까지 9급에서 7급은 쌔가 빠지게 일해야 한다. 뒤에서 넷플릭스 보는 6급 팀장님을 보며 현타를 느끼면서...
 
물론 이 또한 일반화이다.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팀장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내가 두 번째 부서에서 만난 팀장님은 무능력 끝판왕이었다. 출근해서 모니터 보고 멍 때리다가 퇴근하는 게 그분의 일이었다. 일을 아예 안하시니 매번 전임자 팀장이 대신 일을 처리해주셨다. 우리 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팀장이 중재를 해주거나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개입을 안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리지 않는다. 공무원이니까.
 
업무 방식도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 굳이 해도 되지 않을 일까지 비효율적으로 반복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야근할 때마다 현타가 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업무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어떤 일이든 매뉴얼, 원리원칙 중시에 서류와 종이... 틀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로 돌리면 끝인 일인데 이걸 사람이 직접 수동으로 다 한다고...?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내라는 문서는 어찌 그렇게 많은지 내 업무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외부에서 계속 문서를 제출하라고 공문이 내려온다. 기간이라도 넉넉하면 다행이지 오늘 제출 요청해놓고 하루, 이틀밖에 시간을 안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4. 작고 소중한 월급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월급이 적다는 건 이미 감안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들어와서 힘들게 일하다가 월급을 받아보니 금융치료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면 더 화가났고 월급날이 전혀 기다려지지 않았다^^..
물가는 오르는데 공무원 월급은 그에 비례해서 오르지 않는다. 공무원 연금마저도 지금보다 반토막이 난다는데...
여기를 계속 다녀야하는 메리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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